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데사 백국 (문단 편집) === [[보두앵 1세|보두앵]], [[예루살렘 왕국]]의 왕이 되다 === >보두앵의 즉위를 막아야 합니다. 그의 즉위는 예루살렘 교회, 나아가 전 기독교 영토의 쇠퇴를 가져다 올 것입니다. - 교황 특사 다임베르트, [[보에몽 1세]]와 작당하며 - 성묘의 수호자 [[고드프루아]]는 왕위를 사양하고 즉위식을 포기하자 마자 남하하여 다미에타, 하이파를 포함한 곳곳의 [[파티마 왕조]] 영토를 차지하여 예루살렘의 안전을 확고히 했다. 그렇게 분주히 정벌을 계속하던 1100년 7월, 그는 갑자기 요절하고 말았다. 그의 유언장에는 [[예루살렘 왕국]]을 동생 보두앵과 그 혈족들 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상속할 수 없다고 못박혀 있었다. 그러나 교황 특사 다임베르트와 [[보에몽 1세]]는 십자군 왕국을 자기 손에 넣을 계획을 꾸미고, 보에몽이 먼저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만들려 했다. 그러나 고드프루아의 충신들은 예루살렘의 다윗의 탑을 통제하고 보두앵에게 서신을 보내 예루살렘에 최대한 빨리 입성해야 한다고 기별했다. 보두앵에게는 다행히도 보에몽은 그해 8월에 [[다니슈멘드 왕조]]에게 사로잡혔다. 보두앵은 이제 급할 것이 없었다. 그는 멜리테네로 가 다니슈멘드의 특사들에게 보에몽을 선처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멜리테네]]에서 기사 50여명을 모집한 후 백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1100년 10월 왕국 통치에 필요한 금은과 약 9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200명의 기사와 700명의 보병이었다. 백작령에 남은 군대는 겨우 기사 100명 뿐.]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그 와중 [[다마스쿠스]]의 이슬람 영주가 그를 기습하려 했지만, 주변 백성들이 먼저 귀띰해준 덕에 그는 오히려 다마스쿠스 군을 격파하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했다. 마찬가지로 보에몽이 왕이 되길 원했던 그의 친척 탕크레드가 자파 시에서 그를 공격하려고 했지만, 십자군들이 이를 거부하고 나섰다. 보에몽과 결탁한 다임베르트 주교는 시온 산으로 도망쳐 대관식을 거부했지만, 예루살렘 시민들은 오히려 보두앵을 격려하며 그에게 예루살렘 대공 직위를 수여했다. 그는 1100년 11월 초에 도착해 1개월간 예루살렘에서 병력을 모은 후 그해 12월 21일 [[파티마 왕조]]의 [[아스칼론]]을 공격해 빼앗았다. 이로 인해 십자군 사이에 그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고, 다임베르트는 어쩔 수 없이 그해 크리스마스에 그의 대관식을 치를 수 밖에 없었다. 보두앵은 프랑스에 있던 옛 영지와 에데사를 사촌지간인 [[보두앵 2세]]에게 수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